갑자기 열받은 고춧가루 이야기
토스카나에서 뙤약볕에 그을리고 돌아온 다음날이었다. 유쌤과 고춧가루 이야기를 하게됐다. 이태리의 건조한 날씨와 질좋은 햇살이 고추재배에 최고라는 이야기. (유쌤은 한살림생산자이자 유기농 농부이다.) 기회가 되면 이태리에서 고추농사 지어서 태양초를 만들자고도했다. 그걸로 김치와 고추장을 담으면 좋겠다는 바램까지. 난 이런 이야기들이 즐겁다.
나의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과했던걸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고춧가루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알고싶지않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너무 저렴한 한국의 매웃맛에 살짝 의문을 가졌던게 사실이다. 짐작하고는 있었다.
한국의 고춧가루 수입관세는 270%다. 고추재배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칼칼한 매운맛은 한식의 자부심으로까지 이해되고있는 현실에서 한식의 핵심 식재료를 보호하기위한 것이라 이해한다.
그런데 이상한건 수입관세가 270%나 되는데 중국산 고춧가루는 여전히 국산에 비해 너무 저렴하다는것.
이상해서 찾아보니 다대기라는 특별한 용어가 등장했다. 고춧가루에 이런저런것들을 섞으면 다대기라는 혼합조미료가 된다. 이것의 수입관세는 45%. 수입업자들은 고춧가루에 적당한 조미료를 섞고 다대기라는 이름으로 수입한후 다시 체로 고춧가루를 걸러내 팔았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이물질이 완벽하게 걸러지지않아 중국산 고춧가루가 잠깐 문제가 되기도했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다대기 때문이 아니다. 최근 1-2년 사이 중국산 고춧가루 유통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신기술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국내 고추들은 다습한 기후조건 때문에 노천건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중에 대량 유통되는 태양초 중에서 직사광선을 쐬여말린 태양초는 본적이 없다. 하우스에서 말렸다고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자연의 향내를 좀 더 담은 식재료도 명맥을 이어나가야 우리 식단의 품격이 유지된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새로운 수입방식을 접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제발 하우스건조도 좋고, 건조기 건조도 좋으니 냉동고추만 막아주었으면 좋겠다.
신기술은 더름아닌 냉동고추 상태로의 중국산 고추수입이다. 냉동고추로 수입해서 해동하고 건조해서 고춧가루로 판매한다. 냉동고추의 수입관세는 27%. 다대기보다도 낮으니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냉동했다고 위생에 영향없다. 보통의 소비자들에게는 맛도 그닥 차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가을햇볕에 익어가는 고추는 이제 사라지는거다. 국산고추농민들의 타격은 말할것도 없다. 중국산 좋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익히고 말린걸 수입해야 하지 않겠나. 냉동했다가 해동해서 다시 말린 고춧가루에 의지해서 매운맛을 이어가야하는 현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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